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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평론 : 고충환 : 의미의 재구성과 쾌락적인 독서

Noah 0 3,264


의미의 재구성과 쾌락적인 독서



고충환 미술평론가



의미의 재구성. 사람들은 책을 읽을 때 사실은 자기 마음대로 읽는다. 저마다 인문학적 소양과 배경과 수준이 다르고, 그 다른 관점으로 책을 읽기 때문이다. 저자의 텍스트는 독자의 독서행위에 의해 그 의미가 변질되는데, 독자의 인문학적 지평과 저자의 인문학적 지평이 융합되기도 하며, 나아가 독자는 아예 저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텍스트를 읽기조차 한다. 이 읽기과정에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한 것이 소위 열린 텍스트며, 하이퍼텍스트 개념이다. 바로 이 지점으로부터 저자의 죽음 논의가 설득력을 얻는다. 즉 텍스트의 의미가 최종적으로 완성되는 지점을 저자가 아닌 독자로 본 것이다. 롤랑 바르트는 이때의 독자를 능동적인 독자, 적극적인 독자, 쾌락적인 독자라고 부른다. 특히 쾌락적인 독자는 바르트의 핵심개념으로서, 기와의 텍스트에 침투하고 간섭하고 덧대고 부풀리고 해체해 그 의미를 변질시키는 것이다.(혀, 텍스트를 맛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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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아는 멀쩡한 책의 활자를 해체해 재구성한다. 구와 절을 분절시켜(칼로 오려내) 임의적이고 자의적으로 재구축하는 것이다(일종의 책 오브제를 만드는 것) 이와 함께 조사와 명사 등 특정 부분을 칼로 오려 내거나 지워(삭제해) 텍스트 속에 일종의 여백(독자가 텍스트 속에 끼어들어 상호간섭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는 여지와 그 흔적)을 만든다. 이렇게 재구성 되거나 삭제된 텍스트는 맥락을 잃고 문법을 잃어 읽을 수 없는 텍스트로 변질되는데, 이로써 작가는 맥락과 문법의 문제를 건드린다. 즉 맥락이란 텍스트 자체의 구성원리라기보다는(텍스트에 내장된 요소나 성질) 그 텍스트가 맞닥뜨리는 외적상황(외재적 관계)에 연유한 것이며, 문법 또한 자연발생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인공의 소산인 만큼(문법은 체계 내지는 시스템의 문제) 근본적으로 재구성 되고 재부여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의 간섭에 의해 재구성되거나 부분이 삭제된 텍스트는 읽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다른 맥락과 다른 문법을 부여받아 그 의미가 재가동되게 한 것이다. 이렇게 작가는 하나의 텍스트가 독자의 능동적인 독서행위 (독자는 텍스트 속으로 들어간다)에 의해 재가동되는 과정을, 그리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론 텍스트를 자기화 하는 과정(특히 텍스트를 분절시켜 하나의 좁고 긴 띠로 연결한 것을 캡슐에 넣어 밀봉한 오브제 작업에서 극명해지는)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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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 죽은 언어와 의미의 집. 하이데거는 언어를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  존재를 재구성하게 해주는 도구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사전적 언어와 의미로 전재는 낱낱이 재구성될 수가 있을까. 언어란 세계의 현상을 옮겨놓은 기호이며, 사전은 그 의미를 닫으려한다. 이로써 기호와 사전의 동거는 불완전해진다. 사전 속엔 수많은 의미들이 담겨있지만, 객관적 사실과 뻔한 사실(예컨대 지시적 의미와 같은)에 대해선 강하지만, 주관적 사실과 생리적 사실 그리고 특히나 가치론적 사실에 대해선 취약하다. 주관적 사실과 생리적 사실 그리고 가치론적인 사실은 개인이 세계와 만나지는 경험의 종류와 질과 강도 여하에 따라서 차이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사전이 가리켜준 사실을 결정적이고 보편적인 사실로서 받아들이고 내재화 하는데, 그것이 합리와 상식 그리고 선입견과 편견의 지평을 이룬다. 그리고 그 규준에서 어긋나거나 벗어나는 사실은 저절로 불합리와 비상식으로 치부된다. 자기소외와 같은 존재론적 문제, 그리고 왕따와 같은 사회적 소외 문제가 이 지점으로부터 파생된다. 작가의 그림에는 자기 외부의 정황을 볼 수 없을 만큼 고깔을 깊이 눌러쓴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이렇듯 정통성을 부여받은 합리와 상식에 대한 맹신을 암시하며, 도무지 타자성과 차이성을 인정하려들지 않는 맹목을 상징한다. 그리고 곧잘 그 맹신과 맹목은 타자를 공격하고 공박하는 무리고 변질되기도 한다.(삿대질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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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전적 의미에 대해 작가는 몸의 언어(두뇌를 중심으로 그 가장자리에 그려진 혀, 수정체. 나팔관. 오므린 입, 열린 기도, 지시하는 손가락, 그리고 교감하는 눈)를  그 대안으로서 제시하고, 의미란 것이 타자성과 차이성을 아우르는 것(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순환하는 의미, 이접과 연접)으로부터 비로소 파생되는 것임을 제안한다.


사물의 이름, 페티시즘. 피에르 부르디외는 문화지층과 계급지층이 상호 긴밀하게 연동돼 있다고 한다(문화계급론). 엘리트 계급이 향유하는 문화가 다르고,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향수하는 문화가 다르다고 본 것이다. 이런 다른 문화적 지층으로 인해 그들은 저마다 고유의 언어를 발전시키는데, 은어, 비어, 속어가 그것이다(따지고 보면 표준어 역시 처음에는 이런 하위문화 언어의 한 종류에 지나지 않았다). 똑같은 세계와 현상을 지시하기 위해 사용하는 언어체계가 다른 것이다(이쯤 되면 거의 외국인 내지는 이방인 수준이라고 봐야한다). 그리고 그 다름은 단순한 언어의 차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대면하고 대응하는 관점과 의식의 보다 본질적이고 심층적인 차이로까지 확대 재생산된다. 그렇게 한 계급은 다른 계급으로 건너가지 못하고, 한 계급의 의식과 관점과 가치관은 다른 계급의 경계 너머로까지 건네지지 못한다. 다만 저마다 고립된 하위문화의 섬들로써 소외될 뿐이다. 이렇게 여피족은 도회적 감성을 대변해줄 언어체계를 정교화하며, 오타쿠족은 고유의 반항의식을 세련되게 표현해줄 언어체계를 발전시키며, 또한 명품족은 명품과 관련된 언어체계를 그려 모은다. 언어체계가 코드, 모드, 매너로 굳어지는 것이며, 작가의 그림(특히 사진콜라주 작업)은 이처럼 사물화된 의식에 갇혀 소외된 개인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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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에 대한 오마주. 최진아는 샤를 보들레르, 괴테, 랭보, T.S 엘리엇과 같은 작가들의 저작에 등장하는 각종 텍스트를 화면에 오려 붙여 일정한 패턴을 조성한 연후에 그 위에 장기를 그려 중첩시킨다. 여기서 장기로 차용된 되와 심장은 각각 시인의 이성과 감성, 에토스와 파토스를 상징하며, 시 혹은 시인의 원천이며 근원에 해당하는 것이다. 작가는 텍스트가 화면의 중심에 그려진 뇌와 심장을 향하게끔 상사형으로 배치하는 한편, 가장자리를 어둡게 하고 중심 부위를 밝게 처리한다. 이로써 흡사 뇌와 심장으로부터 빛이 발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데, 이를테면 뇌와 심장에다 후광 내지는 광휘를 부여하고 있는 것 같은 분위기가 연출된다. 주지하다시피 후광 곧 님부스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통적인 종교화(종교적 아이콘)에서 성자와 같은 신령스론 존재의 머리 부위를 감싸는 전형적인 기호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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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작가는 결국 시인의 정신(뇌)과 감성(심장)에 대해 거의 종교적 아이콘을 대할 때와 같은 경외감을 부여해주고 있는 것이며, 배경화면에 처리된 금색이 그 신령스런 의미를 강화하고 있다. 방사형 포맷이나 후광 그리고 금색 모두 빛의 전형적인 표상형식들이며, 이로써 작가는 시인에 대한 오마주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작가는 시인에 대한 오마주를 보다 개인적인 층위에서, 노골적으로 섹슈얼한 형태로 표현하기도 한다. 괴테의 <파우스트>나 단테의 <신곡>과 같은 하드커버로 된 저작의 겉장 표면에다 자위나 오럴섹스를 현상시키는 에로틱한 여인의 성적인 모습(작가의 자화상)을 적나라하게 그려 넣은 것이다. 이 작업에서 특히 눈으로 된 성기로부터 마치 절정에서 발해지는 신음소리처럼 새나오는 텍스트가 인상적이다. 이처럼 눈으로 된 성기는 여성의 성기에 눈알을 집어넣는 조르주 바타이유의 저작<눈 이야기>를 연상시킨다. 보는 것은 결국 상대(세계 혹은 텍스트)를 탐하는 것이고, 만지는 것이며, 종래에는 집어 삼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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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책을 읽으면서 이처럼 절정감을 맛본다는 것(책을 통째로 삼킨다는 것, 책과 섹스하고 진정으로 교감한다는 것)이 가능할까도 싶지만 여하튼 작가는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표현한 것이다. 결국 책을 정독한다는 것이므로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이로써 작가는 독서행위를 일종의 성적 쾌락과 동일시하고 있는 것이며, 이를 통해 문학저작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정신적 작업에 자신의 전부를 투자한 저자들과 그 업적에 대한 자신의 지극한 애정을 표현한 것이다.

장노아 작품평론, 최진아 작품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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