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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평론 : 박천남 : 문학을 위하여展, 인사미술공간, 서울

Noah 0 1,661


최진아_문학을 위하여



박천남(성곡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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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책의 형태가 아닌, 이런저런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등에 올리고 남기는 글들에 대한 지적 저작, 즉 디지털 유산에 대한 관심과 논의가 서서히 일고 있다. 미국의 경우, 이와 관련한 관리 서비스가 등장했다고 한다. 간단한 글들이 대부분이지만, 제법 심각한(?) 분량과 전문적인 내용, 관련 답글들은 때론 지상 세미나 중계를 방불케 한다. 한데 묶으면 몇 권의 책이 나올 수 있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분명한 디지털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책은 여전히 인기다. 그 종류와 형식도 갈수록 다양하다. 바야흐로 책의 홍수, 말씀이 넘쳐나는 시대다. 대표적인 아날로그 유산, 대표적인 지적 저작이 바로 책이다. 책과 문학은 세상을 올바로 살아가고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패러다임의 변화에 기여해온 거대한 지적 자원이다. 최첨단 디지털 시대지만, 책의 위용과 가능성은 분명하게 살아 있다.

최진아의 작업은 문학과 회화가 긴밀하게 결합된 것으로, 이른바 알레고리적인 특성을 보인다. 따라서 그의 화면은 언어적인 것과 시각적인 것, 즉 문학과 회화의 친밀성과 상호 관련성 사이에서 강한 변증법적 긴장관계를 노정한다. 계획적으로 산산조각내고 치밀하게 거두절미된 최진아의 화면은 마치 답을 구할 수 없는 퍼즐과도 같다. 문학이라는 거대한 숲속에서 흔히 그러하듯, 하나의 거대한 퍼즐-랜드와도 같은 최진아의 전시공간 속에서 관객은 18세 정도의 키덜트(kidult)가 된다. 말씀으로 가득한 그의 화면에서 명쾌한 답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말씀과 관객의 추론이 물고 물리며 연쇄 교차, 충돌하기 때문이다.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와 닮았다. 작가 자신도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를 던져 놓은 듯하다. 최진아가 선학들의 문학적 성과를 자신의 예술적 현재와 알레고리로 끊임없이 교차, 연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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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으로 문학과 회화는 사실이나 특정 에피소드의 기록이거나 감정의 전달과 표현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지식의 전달일수도 있고 사실의 기록일수도 있다. 또는 상상의 힘을 빌려 각각의 언어와 작법으로 전혀 새로운 판타지를 창조하기도 한다. 전자는 문학적인 어법으로, 후자는 시각적인 화법으로 상상력을 직조하며 신세계를 만들어 낸다. 저마다 개성 넘치는 언어의 조탁과 변형, 이종교배 등의 형식을 통해 해체와 구축 사이를 넘나든다.

특히 문학의 경우, 수많은 수사와 알레고리가 잠복되어 있다. 최진아는 자신이 선택한 책속에 견고하게 기(旣)구조화되어 있는 생성적 문구와 말씀의 조합을 시공간적, 회화적 접합으로 차용, 절충, 대체시킨다. 본래의 책속 말씀을 탈맥락화, 전치 혹은 중단시키거나 서술구조에 반하는 역행구조를 취한다. 박제된 부동의 것을 살아 꿈틀거리는 유동의 것으로 도치시키면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 놓거나 행복한 그림 읽기를 역설적으로 저지시키기도 한다.

저자나 책의 아우라나 지명도에 의지하거나, 특정 문맥을 경구로서 강조하기보다는 책속으로 침투해들어가 랜덤하게, 혹은 치밀한 의도와 연출 하에 말씀과 문장들을 간택, 인출해낸다. 책의 내용을 단순 시각화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해독의 가능성을 관객에게 철저히 의탁한다. 특히 전시공간을 감각적으로 활용하여 말씀의 우연성과 일시성을 강조한다. 특히 적소에 설치된 작품들은 이들 문학과 회화가 가지는 양가적인 감정, 즉 일시성과 영원성 사이의 치밀한 변증법적 긴장 관계 속에서 유지되고 기능하고 있다.

전시장 가득 중세 성당이나 종교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성인들의 두광(頭光)이나 신광(身光), 마치 후광(後光, halo)과 같은 모양으로 책속의 말씀들이 병치되어 있다. 이들은 어느 한 지점(저자, 책, 말씀)으로부터 빛을 발하며 비롯되거나, 어느 한 곳(시대, 현상)을 향해 빠르게 환원되고 있다. 마치 20세기 초 독일표현주의 시를 보듯 문장과 문장의 매끄러운 연결고리는 찾기 어렵다. 과감한 점프컷(jump-cut)을 구사했다. 랜덤(random)한 단순 배열로 보이나 그것들은 기하학적 병렬과 산술적인 누적으로 심리적 두께를 갖는, 마치 말씀으로 가득한 이콘화로 다가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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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과학문명은 진정으로 사람의 마음을 읽거나 달래지 못한다. 모든 것이 송두리째 바뀌는 지난 격변의 과정 속에서 오롯이 남아 있는 것은 아마도 문학과 예술일 것이다. 저자와 책의 영향력에서 보듯, 문학과 예술은 그것이 선사하는 심리적 여운이 중요하다. 그 어떤 계획된 농익은 표현으로도 묘사될 수 없는 그것이 바로 문학의 힘이요, 예술의 힘일 것이다. 시간은 생각의 움직임이다. 생각이 멈추지 않는 한 시간은 죽지 않는다. 시간과 생각이 담겨 있는 것이 문학이요, 예술작품이다. 따라서 책과 예술이 있는 한 모두는 영원할 것이다.

최진아는 현상들의 덧없음 혹은 일시성을 상기시키며 상대적으로 문학과 예술의 위대함과 필요함을 드러낸다. 최진아가 책을 읽으면서 발견하고 확인하는 것은 지식과 무지가 아니라, 아마도 자기 자신일 것이다.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한다. 새로 쓰는, 최진아가 빚어낸 나름의 독특한 방식으로서의 문학은 그에게 있어 갈등의 중심이거나 치유의 중심일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말씀과 행동은 의지의 열매다. 그는 자신이 읽고 감동을 받은 책을 최소한의 시각조건을 통해 최대한으로 전달하려고 한다. 이런저런 빠른 변화 속에서 잃어버린 우리의 침묵과 고독, 속도 속에서 잃어버린 여유를 되묻고 있는 것이다.

최진아는 의미 있는 것을 무의미한 것으로 해체하거나 시간적, 공간적 또는 시공간적으로 시각화, 구체화한다. 새로운 의미로 구조화한다. 그러나 그 결과는 역동성을 창출하지 못하고 다분히 정적이며 주술적, 제의적으로 보인다. 사랑에 답이 없듯 최진아의 문학사랑은 답이 없어 보인다. 솟아나는 열정과 관객에게 유예된 추론과 해석이 있을 뿐이다. 최진아가 다룬 작가와 책은 역사적 관심사였던 동시에 동시대의 문제작들로 당대는 물론 후대에도 상당한 비평적 주목을 끌었던 것들이다. 최진아는 이들을 통해 문학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존재한다는 엄연한 사실과 개인사적인 역사성에 관한 수수께끼를 보다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회화적 현실로 환기시켰다. 이해하기 어려웠던 책이든, 자신에게 감명을 주었던 책이든, 고전에서 건져 올린 최진아의 문학적, 예술적 상상력이 빛난 전시였다.


* 월간 '퍼블릭 아트' 2011년 5월호 <최진아_문학을 위하여>展(2011.3.23-4.16, 인사미술공간) 리뷰.

장노아 작품평론, 최진아 작품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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